한국생명학연구원 대구 청소년 종합상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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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21(수)
생명이란 무엇인가?  
장회익 (녹색대학 총장)


여러분은 초승달의 눈썹모양이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눈여겨 본적이 있는가?

이렇게 질문을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쪽이다” 혹은 “아래쪽이다” 이런 대답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초승달의 모양은 햇빛이 반사되어서 생긴 것이므로 당연히 해를 향하고 있다. 인류가 달빛을 보고 햇빛이 반사되어서 생긴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그리 오래 된 이야기기 아니다. 주의 깊게 살펴보면 새벽에는 동쪽, 저녁에는 서쪽을 향하고 있는 것만 봐도, 이것이 햇빛의 반사라고 하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터인데 그러한 것을 아는데 인류는 수천 년이 걸렸다.  

‘생명’이라고 하는 것도 우리가 수없이 경험하고 알고 있지만, '생명이란 무엇인가?' 이렇게 질문을 던지면, 제대로 우리가 알고 있는지 사실 간단치 않음을 느낄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알려면 달만 보아서는 안 되고, 태양과의 관계를 생각해야 비로소 달을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연관성을 생각해 보는 자세가 중요하다. 달빛이라고 하는 것은 태양빛이 특정 방향으로 반사해서 오는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달은 태양과 함께 이해해야 된다. 다시 말하면 어떤 하나만 집중한다고 해서 그 사물의 본질을 알 수는 없는 경우가 많다. 달만 열심히 보는 사람은 결코 달이 무엇을 향하는지 알 수 없다. 마찬가지로 생명도, 생명 하나에만 집착해서는 생명의 본성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현대과학은 생명에 대해서 대단히 많은 것을 알아냈다. 그러나 현대과학은 생명의 정체, 또는 생명의 본질에 얼마나 접근했을까? 과연 현대과학은 생명의 신비를 풀었는가? 과학자들은 1950년대에, 최초로 유전자를 구성하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분자의 형태를 알아냈다.  DNA라면 지금은 상식에 속한다. DNA라는 것은―DNA라고 하는 대형 분자가― 유전자를 구성하고 있고, 그 속에 생명의 정보를 담고 있다 하는 것이 현대인의 상식이다. 이 DNA 구조를 발견했다고 하는 것은 생명의 이해를 위해 대단히 중요한 진전을 의미하고, 더구나 그것을 활용해서 요즘 소위 '유전공학'에서 '생명조작'으로까지 나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는데, 그러면 DNA를 발견했다고 해서 과연 생명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알아낼 수 있을까?

여기서부터 우리가 한번 생각을 시작해 보자.

그러면 '생명이란 무엇인가?,' 또는 ‘생명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생명의 신비는 어디에 있는가?’ 이런 식으로 생각해 들어가면 ‘우리 사람 속에 생명이 있을 것이다’, ‘세포 속에 있을 것이다, 세포 안에서 가장 핵심적인 DNA속에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다’ 등등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DNA를 발견해 놓고 보니까 이 DNA야말로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생명의 성격하고는 매우 다른, 하나의 분자 덩어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간의 과학발달로 그 분자 구성 요소는 우리가 완벽하게 알고 있다. 거기에는 산소, 질소, 인, 기타 가지로 구성이 되어 있고 각각의 원자 속에도 무엇이 들어 있다는 것은 우리는 완벽하게 알고 있다. 그래서 그 DNA속에 들어 있는 모든 것에 대해서는 훤하게 알고 있는데, 그 DNA가 생명의 신비를 담고 있는가? 이렇게 묻는다면 이 DNA속에 생명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아무도 DNA속에 생명이 들어있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것은 그저 하나의 분자일 뿐이다. 사람세포에서 DNA만 뽑아서 여기에다 놓으면 생명으로서의 기능이 전혀 없다.  그러니까 생명이 생명 노릇을 하려면, DNA가 대단히 중요한 기능을 하는 것은 틀림없고, 생명의 정보를 담고 있다고 하지만, 최소한도 정보로서의 기능을 하기 위해서도 DNA만 뽑아내면 정보로서의 기능을 할 수가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정보로서의 기능을 하고, 특히 생명 안에서의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 하면, DNA를 둘러싸고 있는 나머지 물질이 필수적이고, 그것이 없으면 DNA는 아무 쓸모가 없다. 정보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글은 수많은 정보를 담고 있지만 종이위에 검은 점이 찍힌 것 자체가 정보는 아니다. 읽고 해독할 수 있는 두뇌가 같이 있어야 정보가 된다. 글자 자체만으로는 정보의 의미가 될 수 없고 이것을 읽어서 그 뜻을 파악하는 두뇌가 있어야 된다, 마찬가지로 DNA가 정보 노릇을 하기 위해서는DNA를 둘러싸고 있는 세포가 함께 있어야 된다. 그러므로 DNA가 정교한 만큼 이 주변의 물질도 대단히 정교한, 아주 특별한 어떤 물질로 차 있을 때에 비로소 이 세포가, 그리고 그 안의 DNA가 어떤 생명으로서의 기능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생명이 어디 들어 있느냐 하는 것을 알기 위해서 DNA를 봤더니 DNA 속에는 분명히 없다, 그렇다고 DNA밖에 있는 것도 아니다, DNA밖에 있는 물질도 정교하기는 하지만, 이것 이상은 또 생명이 있다고 보아지지는 않는다. 그러면 DNA와 이것을 합친 세포 속에 생명이 있느냐 하는 질문을 던질 수가 있겠고, 많은 생물학자들은 그렇게 생각을 한다. 이것이 생명의 단위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데 그것도 엄격한 의미에서 그렇게 이해하는 것은 올바른 것이 아니 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만약에 이 DNA를 담고 있는 세포 하나를 고립시키면―빈 공간에 고립시키면― 생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생명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가 없다.  쉽게 얘기해서, 여기에서 사람 몸에 있는 세포가 수십조가 되는 것으로 얘기되고 있는데, 그중에 세포 하나를 떼어서 테이블 위에 얹어 놓으면 전혀 생존이 불가능하다. 물론 단세포 생물도 있다. 박테리아가 대표적인데, 이런 것도 빈 공간 위에 갖다 놓으면 생존할 수가 없다. 그 주변에 어떤 적절한 매체라든가, 뭔가가 있어야 생존한다. 그래서 적어도 생명이라고 하는 것은, 그것이 살아갈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세포 안에 생명이라고 하는 것이 들어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면 어디까지 가야 생명을 알 수 있겠는가?

사람 몸과 같은 것을 소위 유기체(organism)라고 부른다. 그 유기체 단위에 가면 생명이 있다고 볼 수 있는가?  우리 사람의 경우에는 당연히 그렇게 얘기들을 할 수 있겠다. 사람의 생명은 사람 몸 안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마찬가지 논리를 활용하면 그것도 그렇다고 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사람을 고립시켜서 우주의 빈 공간에 갖다 놓으면, 십분도 생존을 못한다. 물론 우리 지구상에서는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생존하고 있지만, 이 지구라고 하는 여건은, 사실 우주 전체 시각에서 보면 대단히 특수한 물질적 여건이다. 거기에 놓일 때에, 또 현재 이 상황의 지구, 이 여건 안에 놓일 때에 생존이 되고 생명 노릇을 하지, 벗어나면 생존이 안 된다. 그러니까 한 사람 속에도 적어도 자족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생명은 있다고는 보기 어렵다.

'그러면 생명은 어디 있는가?' 일단 적어도 이 우주 안에는 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 우주를 벗어날 수는 없으니까 이 우주 안에는 있다 그렇게 볼 수 있다. 그렇지만 그렇게 크게 해서는 생명의 정체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여기서 우리가 질문 하나 할 수 있는 것은, 생명이 자족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최소 단위가 뭐냐 하는 질문을 던져 보는 것이 유용할 것이다. 생명이 생명으로서 존재하기 위해서 무엇 무엇이 반드시 같이 있어야 되느냐,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질문이다. 왜냐 하면 그것이 성립하지 않고는―그 여건이 충족되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생명이 생존하기 위해서 필요불가결한 최소의 여건이 뭐냐 하는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그래서 그러한 것이 있다고 하고, 그것에 대한 명칭을 부여하는 것이 편리할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지금까지 그러한 생각을 별로 하지 못했다. 반달의 눈썹이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느냐, 이런 생각을 안 했듯이 생명이 자족적으로 생존하기 위한 여건이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거기에 대한 명칭조차 존재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온 생명'이라고 이름을 붙여보았다. 이 ‘온 생명’은 바로 그런 의미의 생명이다. 다시 말하면 자족적으로 우주 공간의 어디에 갖다 놓아도 생존할 수 있는 최소의 여건을 가진 구성체. 그리고 우리 지구상에 생명이 생존한다면 바로 이런 ‘온 생명’ 형태로 생존을 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선 대충 우리가 온생명, 다시 말하면 생명이 생명으로서 생존할 수 있는 최소의 여건이 무엇이겠느냐 하는 것을 한번 자유롭게 먼저 상상을 하고, 그리고 어째서 그래야 되는가 하는 이유를 살펴보기로 하자.

과거에 나에게 강의를 들었던 어떤 중학교 선생님이 자기 학교의 중학생 이학년 학생들한테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우리가 지금 어떤 이유 때문에 이지구상에 이대로 우리가 살 수 없게 되었다. 말하자면 우리가 살고 있는 여기에서는 더 이상 살 수 없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사를 가야 되는데 우주의 어떤 빈 공간으로 우리가 이사를 가야 한다. 이사를 가기 위해서 불필요한 것은 버리고 꼭 필요한 것만 가져가야 되는데, 최소의 여건. 우리가 거기까지 가서도 계속 생존할 수 있기 위해서 가지고 가야 될 보따리가 무엇이냐?' 하는 질문이었다. 그래서 답을 자유롭게 써라 해서 얻은 결과를 얘기해 준 것이 있는데, 89명의 중학교 학생들 답이니까 좀 유치하지만 한번 생각해 보고, 그나마 그 안에서 제일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답이 무엇인지를 한번 생각해 보면 좋겠다. 그중 ‘우리나라’라는 답이 6명, ‘지구’ 26명, ‘태양계’ 18명, ‘우주 전체’가 3, 기타―거기는 과학기술도 있고 뭐 여러 가지―가 36명, 이렇게 썼다. 한번 가볍게 생각해 보고 이 답 중에서 가장 근접한 것이 어느 것이 되겠나 함께 이야기해보자.

이 생각 중에 태양계라는 답이 나왔다. 지구도 대단히 좋지만, 태양이 없는 지구는 생각 할 수 없으므로 당장 생각해도 생존이 불가능한 것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나름대로 좋은 답이다. 그럼 여기서 태양계의 화성과 금성도 필요할 것인가? 이렇게 질문을 던지면 어떤 대답이 나로 수 있을 것인가?  여기에는 두 가지 시각이 있다. 현대과학의 시각에서는 필요가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금성이나 수성이 우리한테 주는 영향이 너무도 작다. 물론 중력은 미치지만 미약하고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과학적인 영향력으로 볼 때 거의 얻은 것이 없다.  단 우리가 밤하늘에 화성, 금성을 찾아보는 재미는 없을 수 있겠지만 그것이 생명에 대한 필수적인 것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동양적인 또는 어떤 신비적인 이런 사고를 하는 사람은 그것이 우리한테 운명에 영향을 미친다, 또 점성술, 이렇게 생각하고, 그래서 그것이 없으면 내 운명이 전혀 달라진다, 또 생존 못할 지도 모른다 하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 있기는 하겠지만, 그러나 현대과학이 맞는다면―현대과학이 우리가 신뢰할 만한 진실이라면― 그것은 필요 없다고 보는 관점이다. 내 견해는 어디까지나 현대과학의 입장이므로 내 생각에는 그것까지는 안 가져가도 된다고 본다. 물론 태양계―태양하고 지구―를 가져가는 데 그것이야 저절로 따라올 것이다. 왜냐하면 중력에 의해서 저절로 따라오니까 걱정할 것은 없지만 이론적으로 얘기하면 그렇다. 다시 말하면, 무엇이 필수적이고, 무엇이 덜 필수적이냐 하는 구분을 할 때는 그것은 빠져도 된다.

우리 상식에 의하면 태양 그리고 지구가 있어야 된다 하는 것이 상식이다. 왜 그런가하는 그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생명이 본질적으로 무엇이냐, 어떻게 가능하냐 하는 것에 대한 이해가 들어가야 된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많은 사람들이 던졌는데, 그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흥미롭게도, 생물학자보다는 물리학자들이 많다. 'What is life?'라는 책을 쓴 슈뢰딩거(Schroedinger)라고 하는 물리학자는 What is life?'―생명이란 무엇인가―에서 말하기를 '생명이라고 하는 것은 네거티브 엔트로피(negative entropy)를 먹고 사는 존재다.'는 유명한 말을 했다. 과학자들 특히 물리학자들한테 생명이 가장 신비롭게 보이는 이유는 열역학 제2법칙에 벗어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열역학 제2법칙이 무엇이냐면 '어떤 고립된 체계에서 어떤 질서가 주어지면 그 질서는 계속 붕괴될 수는 있어도 새 질서가 형성될 수는 없다. 없던 질서가 형성될 수는 없다.' 이것이 열역학 제2법칙이다.  '외부의 영향이―특별한 영향이― 없는 한 모든 것은 질서가 깨지는 쪽으로 가지, 저절로 질서가 발생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이 생명현상을 보자. 만약에 지금부터 40억 년 전에 우주에 어떤 우주인이 있어서 지구를 방문했다고 가정해보자. 지구에 와 보니까, 꽤 심심하고 바람 불고 구름도 있고 비도 가끔 오지만 살아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물론 바위도 있고 빛도 있는데, 나무, 풀, 이런 것은 전혀 없었고 그 우주인이 그래서 '야, 이것 꽤 심심한 것이로구나!' 하고 떠나버렸다. 40억 년 후에 그 우주인이 다시 지구를 방문했다고 가정해보자. 그 우주인은 아마 깜짝 놀랄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살아있는 존재들이 있을 수 있을까?'

살아있는 한 사람이 갖는 질서라고 하는 것은 엄청나게 큰 질서이다. 그 질서의 정의를 어떻게 하느냐면, 사람 몸 하나를 구성하고 있는 분자, 원자를 마음대로 뒤섞어서 현재 살아있는 사람 한 사람이 만들어질 확률, 그것이 그 질서의 정도를 이야기하는 것인데 그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사람 몸을 구성하고 있는 원자, 분자의 성분은 뻔하다. 그러나 그것을 아무리 뒤섞어 보아도 이런 살아있는 존재가 나올 수 있는가? 그런데 이 지구상에 누가 와서 무엇을 만든 것도 아이거, 40억 년 전에는 분명 아무것도 없었는데, 40억년 후에는 한 사람도 아니라 수십억의 엄청난 질서가 만들어졌다면 이것은 놀라운 신비가 아니겠는가?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게 됐는가?' 이것을 해결하지 못 하면, 적어도 과학에 의해서 생명의 첫 신비를 파악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19세기말에 볼츠만(Boltzmann)이라고 하는 물리학자가 제일 먼저 그런 생각을 했는데 이 질서는 어디인가 외부에서 와야 된다…그렇게 생각을 하였다. 그것을 우리는 엔트로피라고 한다. 질서의 부정적인 측면, 무질서를 엔트로피라고 하는데 엔트로피는 증가하게 되어 있다. 말하자면 무질서가 증가하게 되어 있는데, 무질서가 감소했기 때문에 과학자로서는 기적이 일어나서 그렇게 되었다고 할 수 는 없으므로 밖에서 네거티브 엔트로피가 들어왔다고 생각을 했다. 다시 말하면, 생명은 네거티브 엔트로피를 흡수하고, 생존하기 위해서는, 지구 전체뿐 아니고, 하나의 개체생명도, 계속해서 네거티브 엔트로피를 받아들여야 질서를 유지할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당장 붕괴가 되어서 생존이 불가능해진다고 발표를 하였다.

그러면 그것은 어디서 오는가를 살펴보니 태양이라는 결론을 얻었고 그럼 태양에서 네거티브 엔트로피가 어떻게 오느냐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유 에너지―free energy―라는 말은 네거티브 엔트로피하고 물리적인 의미는 조금 다른데 기본적인 내용은 동등하다. 그래서 네거티브 엔트로피 대신에 자유 에너지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조금 더 적절한 표현인데, 일정한 온도 안에서 생존해 가는 어떤 체계는 자유 에너지를 받아들여야 하는데, 자유 에너지는 계속 잃을 수만 있고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자유 에너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받아들여야 한다. 이 자유 에너지를 받아들일 수 있는 기본적인 방법은 태양보다 지구는 상대적으로 온도가 낮다. 그러면 열에너지는 뜨거운 쪽에서 그렇지 않은 쪽으로 오게 된다. 그래서 햇빛에너지(=E)가 오게 된다면 이 E라는 에너지를 가지고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자유 에너지의 상한을 얘기할 수가 있는데,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자유 에너지는 이 E에 비례하게 된다.

수식으로는 (1 - Te/Ts)E 라고 표기한다.

여기서 Ts는 태양의 온도, Te는 지구의 온도인데, 이것은 절대온도라는 스케일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273도를 0도로 하는 스케일인데. 만약에 지구하고 태양이 같으면 1-Te가 1이 되어서 1 - 1, 즉 0가 되므로, Free 에너지를 하나도 못 얻게 된다. 그래서 사람이 생존할 수 있는 자유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는 태양은 뜨겁고 지구는 차야 한다. 그리고 이 온도 차이가 클수록 얻을 수 있는 에너지의 양이 많다. 이런 물리학의 이론이 성립한다. 이것이 열역학 제2법칙의 또 다른 표현이다. 그래서 이런 이유 때문에 반드시 우리보다 뜨거운 태양이 있고 최소한의 자유 에너지를 얻게 되며 이것을 얻으면 우리가 그것을 활용해서 ‘질서’가 증가할 수 있게 되고 그래서 40억 년 만에 이러한 생명체가 높은 질서를 가지고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이론이다. 물리학은 그래서 생명에 대한 가능성은 확보를 했다. 그전까지는 가능성조차도 확보를 못 했는데 이제는 가능성은 확보했다.

그러나 이것은 가능성일 뿐이지 이 자유 에너지가 얻어지는 것이, 특별한 어떤 상황에서 최대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이것이다 또는 어떤 상황이라야 얻어지느냐? 하는 것을 풀려면 다시 또 지구에서 태양으로부터 에너지를 받아서 이런 자유 에너지를 얻기 위한 아주 정교한 어떤 장치가 필요하다.

과연 어떤 장치를 써야 태양에서부터 우리한테 필요한 자유 에너지가 얻어지겠는가. 결론을 말하면 그것이 녹색 식물의 잎이다. 지구에는 녹색 식물의 잎으로 덮여 있다. 태양 쪽에서 내려다보면 지구를 거의 완벽하게 덮고 있다. 잎들은 전부, 상당히 많은 부분이 태양을 향하고 있다. 여기서 에너지를 얻어서 자유 에너지로 환원하게 되는데, 아주 정교하게, 태양에서 에너지를 얻어서 물질의 에너지를 높여주고, 그 에너지를 다시 활용해서 여러 가지, 정교한 신체와 신체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 준다. 그것이 없으면, 현재 우리가 얻는 생명이 필요로 하는 자유 에너지를 얻을 수가 없다.

그러면 이 녹색식물의 잎은 처음부터 있었는가? 40억 년 전에는 없었던 일이 어떻게 해서 가능해졌는가? 이를 생명의 기원론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아주 단순한 사고를 해 볼 수가 있겠다. 지구에서 어떤 생명체 또는 이런 정교한 것이 만들어지기 위해서 확률적으로 뒤흔드는―뒤섞이는― 이런 과정 즉, 무질서한 뒤섞임 과정―요동―이 있었을 것인데, 요동 속에서 우연히 이렇게 모여서 이것이 살아 있는 생명이 될 확률이 얼마나 될 수 있을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가 지금 지구상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생명체 하나가 우연히 만들어질 확률은 우주가 발생해서 지금까지 온 기간 내에 그런 것이 한 건도 되기 어려울 정도로 확률이 낮다. 인간 한 사람이 우연히 물질이 요동을 치다가 모이고 보니까 저런 사람이 되었다 할 확률은 우주 나이의 백만 배가 지나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것만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설명하면서, 그것은 자연법칙에 의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신이 특별히 이렇게 만들어내야 된다하고 설명한다. 기독교에서 특히 그렇게 생각한다. 물론 그것도 틀린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고 과학자들은, 하나님이라고 하더라도 이 우주를 만드신 이후에 생명이 나오기까지는 자연의 법칙을 통해서 만들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만들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떻게 만드셨는지를 알고 싶다 하는 입장이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그것을 설명을 해야 되는데, 아주 기본적인 포인트 중에는 물론 다윈의 진화론이 있다.  다윈의 진화론은 확률측면에서는 매우 불완전하다. 그래서 다윈의 진화론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항상 확률을 가지고 이야기하는데, 확률적으로 그렇게 되기 어렵다하는 비판이다. 태양에서부터 지구로 에너지가 오면서, 물질이―지구 주변의 물질이― 상당히 요동을 한다. 이러한 요동―말하자면 평형상태가 아니고 비평형의 어떤 요동―이 있으면 그러면 어떤 것이 발생할 수가 있는가 하면, 우연히 어떤 질서가 만들어졌다 없어지고, 만들어졌다 없어지고 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틴버진’이라고 하는 과학자가 최근에 그런 이론을 발표해서 생명의 기원에 대한 좋은 기여를 해서 노벨상을 받은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우연히 어떤 질서가 생겨날 수가 있다. 이런 소용돌이 속에 어떤 우연한 질서가 생겨날 수 있다.'고 하였다. 그 예는 많다고 보는데, 물방울이 저절로 생겨나기도 하고, 또는 아주 큰 규모의 태풍이란 것도 있다. 태풍이라고 하는 것은 보통 공기가 지나갈 때는 태풍이 안 생기는데, 우연히 어떻게 소용돌이가 생기면 이것이 점점 세져 가지고 굉장한 힘을 지닌 국소적인 현상이 발생한다. 그래서 이것이 상당 기간 이동도 하고보통 1-2주간 수명을 유지하다가 저절로 없어지기도 한다. 그러니까 어떠한 우연속의 계기 때문에 뭐가 하나 발생하면 그것을 성장시켜서 한참 동안 존재하다가 없어지는 이런 현상들이 많이 있다. 그런 현상들은 과거에도 있고 지금도 있고 항상 있는데, 그러나 그것은 생명의 기원이 아니다. 그 속에서 그것을 통해서 생명이 나타날 확률은 거의 없다.

그런데 그러한 것들 중에서 묘한 성격을 가진 것이 하나 있다. 이것이 뭐냐 하면 일종의 꼬리이론이다. 어떤 우연히 일어난 것에 그냥 상징적으로 단 꼬리인데, 이 꼬리의 역할이 뭐냐 하면, 이것이 한 1주일 동안 존속하면서 이 꼬리를 가지고 있으면, 이 꼬리는 자기가 존속하는 기간 내에 옆에 있는 물질들에게 영향을 주어서 옆에 있는 물질들이 자기를 닮은 것이 되는데 기여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면 하나가 생기고, 이것이 없어지기 전에 이 꼬리 때문에 하나가 또 생기고, 그러면 이것도 또 없어지기 전에 이 꼬리가 달렸기 때문에 또 하나 꼬리 달린 것을 만들기도 하는데, 이런 것을 화학에서는 ‘자체 촉매적 개체’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이것이 있으면 자기가 있음으로써 자기복제를 만드는 데 기여한다……. 그러니까 처음에 자기가 우연히 만들어질 확률은 아주 낮아서 몇 백만 년 만에 하나가 나올 수 있는데, 이것이 하나 있으면 1주일 만에 하나씩 나올 수가 있게 된다. 이런 것이 발생하면, 이것이 하나씩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 생존하는 동안에 두 개만 만들어서 그다음 세대는 둘이 되고 이것이 다음 세대에는 네 개가 되고. 여덟 개가 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그래서 그 결과는 순식간에 지구 전체를 둘러싸게 된다. 지구 전체를 이런 것이 둘러싸고, 계속 몇 백만 년을 유지하다가 그다음에는 이것 둘이 더 정교하게 결합한다. 더 정교하게 결합을 해서, 또 자기하고 비슷한 둘짜리를 만들어내는, 이런 것이 발생할 확률이 또 있다. 이것이 백만 년에 한번이라고 하더라도 한번 만들면 다시 또 지구 전체가 이런 것들로 둘러싸여지게 되고 그리고 백만 년을 이런 것이 있는 상태에서 지나가게 된다. 그다음에 이것들이 또 어떻게 해서 네 개짜리, 예를 들면, 또는 세 개짜리, 뭐 여덟 개짜리, 이런 것들이 또 더 정교하게 만들어질 확률이 있고, 그것도 역시 한번 만들어지면 그것은 또 몇 백만 년 지속한다. 이러한 것이 거의 기적적인 일인데, 보통 그 기적이 일어나기 어려운 이유는, 처음에 이것 하나 생길 기적, 이것이 또 이렇게 될 기적, 이것을 확률적으로 전부 곱해야 된다. 그렇게 되면 아주 작아지는데, 이 경우에는 곱하는 것이 아니라 더해주기 때문에 상당히 확률이 높다. 그래서 이렇게 해서 몇 억 년이 지나면, 이것의 결합을 통해서 높은 질서를 가진 정교한 존재가 지구를 계속 둘러싸고 이것은 하나가 생기면 없어지지 않는다. 또 다시 이것을 만들기 때문에 여기다가 다윈의 진화론을 적용할 수가 있게 된다. 다윈의 진화론에 의하면, 그런 것들 중에 조금 더 정교한 것이 생겨서, 덜 정교한 것보다 그것이 더 또 잘 생존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40억 년 이후에는 이 지구에 지금 우리가 보는 것과 같은 이런 생명들로 꽉 찰 수가 있고, 그러한 것들이 계속 만들어졌을 때에 이것을 생명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질 수 있는 이 전체 여건, 이것을 나는 '온 생명'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 안에 나타나는 작은 개체를 '낱 생명'이라고 부른다.

‘온 생명’은 전체를 둘러싼 것을 하나로 볼 때 ‘온 생명’이고, 그 안에 발생하는 작은 것들을 우리가 ‘낱 생명’이라고 부를 수가 있다. 그래서 ‘온 생명’이라고 하는 것은, 최초로 이런 것 하나가 만들어지고 이것이 계속해서 변화하고 계속 성장을 해서 현재까지 이르는 우리를 둘러싼 생명계의 전체를 설명하는 개념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하나의 세포가 만들어지고 둘이 되고, 넷 되고, 여덟 되고 해서, 성체로 성장하듯이, 이 온생명이 처음에 하나의 개체인 낱 생명이 생겨나서 이것이 40억 년을 지나면서 계속 성장해서 오늘날의 우리 온생명의 모습을 띠게 되었고, 그래서 이것이 하나의 생명체처럼 존재하게 되었다고 본다. 우리는 지구 안에서만 살기 때문에 구분해서 보이지, 이 전체의 연관관계, 이것의 역사적인 과정을 보면 모두 연관이 되어있다. 개체들 중 일부는 여기서 녹색식물의 잎을 만들고, 이것들 가운데 일부는 녹색식물의 잎을 만들고, 또 나머지는 이것을 운반해 주는 역할을 하고, 이러한 과정의 자유 에너지를 전지구상의 모든 낱생명들에게 공급하는 체계를 이루게 된다. 이 체계가 40억 년 동안 변해 오고 성장해 왔다. 이 모습을 우리가 생명이라고 한다.  만약에 우주인이 있어서, 우주인이 밖에서 생명을 본다고 그러면, 바로 이러한 것 전체를 생명이라고 할 것이다. 하나하나는 따로 존재 할 수가 없고, 나머지 이것 없이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에 구분되어서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구 안에 사는 우리들은 부분에 집착해 있어서 생명을 상호연관성을 모르고 보니까 올바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생명이 신비하다고 생각하면서 뚫고 들어가 봐야 아까 진정한 생명을 찾기란 어렵다. 그러므로 생명이란 전체를 보아야만 하고 이 전체가 함께 있을 때에 생명 노릇을 한다.

한편 낱생명들도 하나하나로서 상당히 정교한, 그리고 독자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의존적이다. 온생명이 없으면 생명으로 존재할 수 없으므로 지극히 의존적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이 자체도 독자적인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의미 있는 생명의 단위이다. 그래서 개체들을 낱생명이라고 불러야 되고 이러한 것이 유지되는 전체를 온생명이라고 불러야 우리가 생명을 이해할 수 있는 진정한 생명이 된다.

우리가 생명을 보기 위해서, 생명 하나하나 개체를 아무리 뚫고 봐도 생명은 보이지 않는다.  제대로 생명을 알기 위해서는, 태양과의 관계, 전체에서 어떻게 해서 이런 자유 에너지가 오고, 그것이 이러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현재까지 올 수 있었느냐, 그 전 과정을 한눈에 보아야 생명이 보인다. 그래서 우리가 생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온 생명’을 파악하고 ‘온 생명’의 생리를 파악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온 생명’이라고 하는 것이, 생명이 일단 존재 한다면 갖추어야 될 조건을 가진, 생명의 기본적인 단위이다. 많은 사람들이 온생명이라고 하니까 온생명을 우주 전체와 같은 것으로, '우주생명' 이렇게 해석을 하는데, 단지 이것은 최소단위일 뿐이다. 온생명이란 생명이 존재하기 위한 최소단위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고유명사가 아니고, 보통명사이다. 우주 안에는 여러 개의 온생명이 있을 수가 있다. 다시 말하면, 하나의 온생명은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 지구가 바로 그것이다. 지구는 하나의 생명이다.  그래서 이 지구 온생명은 최초의 하나의 낱생명에서부터 출발해서 지금까지 온, 하나의 온생명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 사람 하나가 하나의 세포에서부터 분할되어서 왔기 때문에 하나의 개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우리 지구의 온생명은 하나의 온생명이다. 그런데 만약 어떤 은하에 있는 다른 별에도 생명이 있다 하면 그 생명은 어떤 형식으로 있는가하면 그도 또 하나의 온생명이다. 그러니까 다른 별, 일반 태양이 아니고, 다른 별을 기준으로 해서 또 하나의 온생명 형태로 또 생명이 있을 수 있다. 그런 생명은 이론적으로 보면, 상당히 여러 개가 있을 수 있다. 왜냐 하면, 태양과 지구라고 하는 이 관계가 대단히 특수하기는 해도, 우주의 그 많은 별들 중에 이와 비슷한 여건을 가진 것이 적지 않으리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여러 개의 온생명이 있을 수 있고, 우리가 만약에 외계의 생명을 만난다면 다른 온생명을 만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현재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고, 확실한 것은 하나의 온생명을 우리가 확인했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속해 있는 이 지구의 온생명이다. 우리들 자신도 이 온생명의 한 부분이다. 온생명을 떠나서는 우리 독자적인 생명이라고 하는 것은 생각하기가 어렵다. 개인은 물론 의미 있는 개체이고 낱생명이긴 해도 이 온생명안에 들어간 어떤 부분이다.

이럴 경우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존재가 너무 미미해지는 것이 아니냐 하고 우려할 수도 있다. 사실 우리는 물질 구성요소로 보면 별 것 아니고, 생명으로 보더라도 이 많은 온생명중에 일부일 뿐이다 하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우리 인간에 대해서는, 온생명에 들어 있는 하나의 낱생명이기는 해도 상당히 중요한 의의를 부여할 수가 있다. 온생명은 지금부터 35억 년 내지 40억 년 전에 지구상에 출현했다고 이해하고 있는데, 인간은 불과 한 2, 3백만 년 전에 출현했다. 그런데 인간이 출현하기까지 온생명은 자기 자신을 의식하지 못 하고 지내온, 그러니까 온생명안에서 '내가 나다.' 하는 의식을 가진 존재가 없었다. 우리가 일단 사람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우리가 다 아는 현상이지만, 만약에 우리가 사람으로 태어나서 '내가 어떤 존재다.' 하는 것을 의식 못 하고 살아간다고 한번 생각해 보자. 이런 사람은 식물인간이 되어서 산다는 것인데, 이것을 참다운 인간으로 살아있다고 볼 수는 어 없을 것이다. 우리 온생명은 살아있는 생명으로서 40억 년을 지나면서 식물인간 비슷한 존재였었다. 그것 은 엄청난 일이다. 사람의 경우는 불과 1, 2년만 돼도 어렴풋한 의식이 생겨나고 10살만 되어도 거의 '나'를 알고 있는데, 그런데 인간이 출현함으로써, 인간은 온생명의 일부면서, 인간이 온생명의 밖에 있는것이 아니라, 인간이 온생명안에 나타남으로써 '내가 나다.' 하는 존재가 생겼다. '내가 나다.' 하는 존재는 이미 2백만 년 전에 우리 인간이 살면서 그런 의식을 가지고 살아왔다. 어렴풋하게는 다른 고등동물들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데 특히 최근에 와서 '나는 어떤 존재냐?' '내 뿌리는 어디까지 가느냐?' 하고 살펴보면 30- 40년 전에 내가 출생했다는 것을 넘어서는 의식의 확장이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태어나서부터 벌써, 눈을 뜨기 전에 입을 놀려서 젖을 빨 수가 있었다. 소리를 낼 수가 있고 몸을 움직일 수가 있었다. 이것은 내가 배워서 한 것은 아니다. 이것은 우리 온생명이 생겨나면서 계속해서 그 지혜를 축적해서 나한테 전해준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의 DNA속에 전해진 것이라는 뜻이 된다. 그러니까 나라고 하는 존재는 이 기간동안 만들어진 것이지, 내가 태어나서부터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얻은 그 능력이라고 하는 것은 그 전체에 비하면 엄청나게 작은 것이다. 내 몸 전체가 얼마나 정교하게 움직이고 있는가? 이것은 내가 하고 싶어서 배워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다. '나'라고 하는 존재는 나의 출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랜 이 전체 즉 온생명에서 습득되고 진화해온 결과이다. 최근에 현대과학의 지식을 다 종합해 보니까 '나는 어떤 존재다.' 하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는 온생명이 40억 년 동안 지나다가 비로소 바로 오늘 이 시점에 와서 '아, 내가 어떤 존재다.' 하고 깨닫게 된 것이다. 우리가 깨닫는다는 것은 바로 온생명이 깨닫는 것이다. 우리가 온생명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까 우리가 온생명의 주인인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깨닫는 것이 바로 온생명이고 40억 년 만에 처음으로 '내가 어떤 존재다. 내가 어떻게 태어나고 어떻게 지금까지 왔다. 그리고 나는 어떻게 살아가는 존재다.' 하는 것을 최초로 의식을 했다고 한다면 엄청나게 중요한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크기 때문에 우주사적인 사건이라고 불러야 된다고 생각한다. 우주의 역사는 150억 년밖에 안된다. 이런 일은 지국의 역사 40억 년 만에 처음이다. 그러니까 우주역사에 몇 번 있을 수 있을 만한 사건이지, 역사적인 사건 정도가 아니다. 이런 사건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데, 그 사건이 인간을 통해서 일어나고 있다. 인간이란 존재가 없으면 아무리 온생명이지만 자기를 의식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 역시 또 현대과학의 입장이긴 하다. 이런 과학적인 사고와 달리 생각하는 사람은, 돌도 의식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고, 산도 의식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믿을 아무런 과학적인 증거는 없다. 그러나 인간이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과학적인 증거가 있고, 우리 자신이 지금 체험하고 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인데, 현대과학에 의하면, 인간이 있기 때문에 온생명이 40억 년 만에 처음으로 자기 아이덴티티를 찾았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을 우리 사람의 경우에 비유를 하자면, 사람도 물리적으로 보면 신경세포들의 집합적인 활동이고, 신경세포들이 두뇌에 가장 많이 모여 있는데, 이것들의 집합적인 활동 속에서 세포가 그렇게 많아도 세포 하나하나 뿔뿔이 아이덴티티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고, 그 전체가 묶여서 '나'라고 하는, 그런 의식을 가지게 된다. 온생명이 하나의 존재로서 '나'라고 하는 의식을 가지게 된 것은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들의 문화적인 상호작용에 의해서 나타난 것이다. 아는 어떤 특정한 개인이 그것을 아는 것은 아니고, 수많은 인류의 지혜가 집적이 되어서 우리가 이런 의식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래서 인간의 집합적인 지혜, 문명이, 문화가 온생명으로 하여금 '나'라는 것을 알게 했다. 온생명안에 많은 생물 종들이 있는데, 그것은 말하자면 사람 몸에 여러 종류의 세포들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 가운데 인간이라고 하는 생물 종은 사람 몸 경우의 신경세포에 해당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온생명에서 '앎'이라고 하는 것을 관장하고 있다. 그리고 '앎'만 관장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몸을 움직이는 코디네이터의 역할을 한다. 그래서 인간은, 온생명의 물질적인 여러 가지를 조정하고 있고, 특히 '앎'의, 정신 부분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현재 여기에 존재하지만 온생명의 입장에서 보면 대단히 특별한, 그리고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존재다 하는 자긍심을 가질 수 있다 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지금 과연 우리 이 온생명은 건강한가?' 그런데 이 온생명의 건강 문제가, 간단하지가 않다. 이 온생명에는 의사가 없다. 지금까지 우리 개인의 건강을 보살피는 의사는 수천, 수만 명이 있을 터인데, 그것보다 백 배, 천 배 더 중요한 온생명의 건강을 담당하는, 전문적인 자격증을 가진 의사는 없고, 그런 자격증 제도도 아직 없다. 그래서 온생명의 건강을 체크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사람의 건강은 체크하기가 쉽다. 건강한 사람, 건강하지 않은 사람을 비교해 보고 그 차이를 가지고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온생명은 우리가 알기에 현재 하나밖에 없다.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없다. 지금까지는  어떻게 운이 좋아서 40억 년을 버텨왔다. 그러나 이것은 생명이기 때문에 언제고 붕괴될 수가 있다. 쉬운 예로, 태양에서부터 무슨 불덩어리가 하나 튀면 어떻게 되겠는가? 온생명은 매우 약한 존재이다. 그러니까 건강 문제가 대단히 중요한데, 자격을 가진 의사의 얘기는 없지만, 우리라도 최선의 생각을 해 보아야 한다. 그런데 그것을 하기 위해서는 사람도 그 안의 또 하나의 생명이기 때문에 닮은 점이 많다. 동양에서도 사람하고 하늘이 닮았다고 한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다. 온생명하고 우리 사람은 많이 닮았다. 그래서 오히려 사람의 건강을 비교해 보면 재미있는 관찰을 할 수 있다. 사람은 건강하지 않을 때 자각증세를 느낀다. 대개 으슬으슬 춥다든가 불편해져서 병원을 찾아가게 된다. 그런데 온생명이 지금 으슬으슬하다. 많은 사람들이, '지구, 이대로 괜찮은 거야?' 상당히 걱정을 한다. 생태계에 문제가 있다는 자각증세도 있다. 사람은 이상이 있으면 체온이 올라가는데, 지구를 체온계로 잰다면 온도가 자꾸 올라가고 있다. 사람의 체온이 2,3도 올라가면 문제가 심각한데, 지구 평균온도가 몇 십 년 전에 비해서 2, 3도 올라가고 있다. 지구같이 큰 스케일에서 2, 3도가 무슨 문제냐고 할지 모르지만 지구같이 큰 스케일에 2, 3도라 하면 엄청난 것이다.

사람이 아프면 그다음에는 혈액검사를 한다. 온생명의 피는 무엇이냐면 강물, 바다, 공기 이런 것들이다. 그런데 40억 년 동안 깨끗하던 강물과 바다와 공기가 갑자기 더러워지고 있다 하는 것을 우리가 피부로 느낀다. 그리고 노폐물이 신체에서 제거되어야 하는데, 쓰레기와 공해물질이 자꾸 쌓이고 있다.

온생명에서 세포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개체 생명이 아니고 생물 종들이 생태적 균형을 이루면서 온생명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생물 종이 멸종되고 있다. 과거 지구의 역사 어느 때보다도 몇 천 배 빨리 멸종을 하고 있다. 그것을 더 정확하게 수치로 나타내면, 1년에 2만7천 종이 멸종하는 것으로 윌슨이라고 하는 생물학자가 추산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라면 천 년후에는 2천7백만 종이 멸종한다는 이야기이고, 1년에 2만7천 종이 멸종하면, 현재 우리 지구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는 생물 종이 대략 3천만 종 내외인데 이 속도로 가면, 천 년이 지나면 2천7백만 종이니까 거의 다 없어진다는 말이다. 온생명의 나이를 생각해 볼 때 온생명 나이는 40억 년인데, 그리고 앞으로 우리 온생명이 태양계안에서 존속할 기간이 50억 년이 남아 있는데, 지구생명은 불과 1천년이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위기인  것이다. 앞으로 50억년이 지나면 태양은 수명이 끝나고, 태양에서 에너지로 태울 수 있는 연료가 다 고갈된다. 그때가 되면 최소한 지구상의 생명은 존속할 수 없다. 그런데 만약에 인류가 앞으로 50억 년을 더 버틸 수 있으면 이것은 틀림없이, 우주내의 다른 태양―별―들이 많으니까, 이중에서 아마 생존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 기술로는 안 돼도 그때는 가능하리라고 본다. 그러니까 50억 년을 버틴다면 사실은 무제한의 수명을 버틴다는 얘기나 마찬가지이다. 지금 마흔 살인 사람이 앞으로 한 50년 더 살 수 있는데 신체검사를 받았더니, 10분후면 죽겠다고 진단을 내리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지구는 지금 40억 년을 건강하게 버텨왔다.

우리의 생태계가 만 년 전까지는 굉장히 건강했다. 지구는 사람이라고 하는 이런 영특한 존재까지도 빚어낼 만큼 아주 건강하고 생산적인 존재였는데, 그러다가 인간이 문명을 만들면서 생태계를 파손시키기 시작해서 최근에 이런 상황이 오게 되었다. 만약에 밖에서 우리 온생명의 여러 가지 생물 종의 상황을 보면 거의 모든 생물 종이 다 멸종하거나 아주 작게 생존하고 유일하게 하나의 생물 종만 전체를 둘러싸고 번성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 생물 종이 뭐냐면 바로 인간이라는 생물 종이다. 인간이라는 생물 종이 전체를 둘러싸고 나머지를 전부 숨을 죽여서 생존이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이 현상을 우리 사람으로 보면 바로 암이라는 질병 같은 것이다. 암세포는 어떤 특정 종의 세포들이 왕성하게 번성을 해서 전체의 생리를 그르쳐서 결국은 생존할 수 없게 만드는 질병이다. 다시 말하면, 이 온생명에서 암이 발생한 것이다. 그 암세포란 바로 우리 인간이다. 그런데 여기서 커다란 아이러니가 발생하는데, 인간이라는 존재가 있음으로써 온생명은 정신적인―자기를 의식하고 있는― 이런 새로운 존재로 비상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지금 온생명은 이제 '나'라고 하는 것을 알고 정신적인 존재로서 의식, 말하자면, 정신세계를 개척해 나간 새로운 삶을 누려갈 가능성에 놓인 반면에, 바로 그것을 가능하게 해준 인간이 암세포가 되어서 신체를 망치고 있는 형국이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하고 있는 상황이 지금 우리 온생명이 당하고 있는 입장이다.

이렇게 되면 답은 명확하다. 암적인 상황은 그대로 두고 온생명이 천 년후에 없어지도록 두는 방법이 있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우리 개인, 개체로서 보면, 우리가 사는 기간 동안 앞으로 한 5, 6십 년 동안은 편안히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짧은 기간을 잘 살기 위해서 앞으로 50억 년 내지 무제한의 수명을 가진 온생명을 죽여버리는 잘못을 범할 것이냐 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보아도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 생태계 문제가 중요한 부분인데, 문제는 '어떻게 살리느냐?' 또 '살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문제냐?' 이 문제가 지금 걸려있다. 그러니까 살려야 된다 하는 당위성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할 것이냐?' 이 문제가 남아 있다. 이상적인 경우를 먼저 한번 생각해 보자. 그 경우는 지구에 인간이 살면서도 인간에 의해서 나머지 생태계가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 상황으로 사는 방법이다. 실제로 우리 과거에 그런 시대가 있었다. 대략 5만 년 전부터 만 년 전까지 인구학자들이 살펴본 바에 의하면, 그 기간 동안 인구가 변하지 않았다. 지구 전체의 인구가 거의 변하지 않았다. 그 의미는 그때는 생태적인 균형을 완벽하게 유지한 시기라는 말이다. 인간이 아주 자연적인 조건에서 전혀 생태계를 크게 건드리지 않으면서 살 수 있는 인구, 적정인구가 약 4백만 명 정도였다. 4백만 명 정도면 이 지구는 건강한 생태계를 유지하고 살수가 있다. ,극단주의적으로 이야기하면 그렇다. 지금은 그런데, 인구가 65억을 넘은 지가 몇 년 되었다. 그러면 이 많은 인구가 여기서 이런 생활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아주 이상적인 가정을 하자면, 지구와 같은 행성이 천5백 개가 있으면 된다. 그러면 4백만 명씩 나누어 살게 하면 문제가 해소될 것이다. 그런데 지난 50억 년간 지구 표면적은 1평방미터도 증가하지 않았다. 앞으로 50억 년이 지나도 표면적이 1평방미터도 증가하지 않을 것이다. 그 기간 동안 지구와 같은, 비슷한 것을 발견할 가능성조차도 극히 희귀하다. 그러면 이 상황을 우리가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 이것을 꼭 나쁜 의미로만 해석할 것은 아니다. 적어도 우리가 지구 생태계를 그만큼, 말하자면, 변형시키고 인구를 증가시키는 가운데 인간만의 독창적인 정신적 문명을 만들었다. 그럼으로써 온생명으로 하여금 어떤 정신적인 존재로 바꾸는 데 긍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그러니까 이 두 가지를 다 함께 생각해야 한다. 인류가 이제는 만 년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러나 이대로 갈 수도 없고 이 인구가 살아가되,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최대의 지혜를 짜낼 수밖에 없다. 그 최대의 지혜를 짜도 지속이 불가능하다 그러면 이제 이것은 운명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그것도 안 하고 요행을 바란다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과학적, 기술적, 사회적인 모든 지식을 동원해서 이 생태계의 건강을 유지하면서, 온생명의 건강을 유지하면서도 살 수 있는 이 길을 찾아야 된다는 점이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온생명의 생리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이 온생명의 생리를 정확하게 파악한다는 것이 바로 생명질서를 어떻게 찾아가느냐 하는 그 얘기의 다른 표현이 될 것이다. 생명질서라고 하는 것은 온생명의 생리를 바로 파악하고 거기에 맞추어서 살자는 것이다. 이대로 가면 우리 한두 세대는 살 수 있을지 몰라도 우리는 엄청난 죄를 범하는 셈이다. 왜냐하면 영구히, 앞으로 있을 생명을 다 없애는 것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온생명의 생리를 바로 찾고 거기에 맞추어서 살아야 된다.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가치관을 거기에 맞게 바꾸어야 된다는 점이다. 가치관이란 것은 지금까지의 생명관하고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지금까지의 생명관은 개체 중심의 생명관이었다. '생명은 개체다.' 그러니까 생명이 최대가치이고 절대가치였다. 그래서 그 개체들이 절대적으로 생존해야 되기 때문에 각자가 서로 생존이 함께 되지 않을 때는 서로 투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말하자면, '생존투쟁', 이것이 생명의 질서라고 보았다. 그러니까 이 개체 생명에 대해서 절대가치를 부여하는 한, 그것밖에 나올 것이 없다. 그리고 또 문제가 있다. 사람의 생명이나 토끼의 생명, 박테리아의 생명, 이것은 같은가 다른가의 문제이다. 어떤 것을 택하더라도 개체 생명 중심의 상황에서는 올바른 생명윤리를 발견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온생명이라고 하면 함께 존속하는 그런 형태의 생명이고, 훨씬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생명윤리가 분명해진다. 다시 말하면, '이 전체가 온생명이다. 이 온생명의 가치야말로 이 개체 생명의 가치를 능가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다. 어떻게 하든지 간에 온생명을 살려놓고 봐야 된다. 그래서 온생명을 살려놓고 그리고 온생명을 살린다고 해서 그 개체 생명을 죽여도 된다는 얘기가 아니고, 개체 생명이 다 죽으면 온생명도 살 수 없다. 함께 살아야 되는데 적어도 온생명의 입장에서 온생명이 건강하면 이것을 절대가치로 놓고 그 안에서 이것들은 그 온생명의 건강에서 어떻게 기여하는 것인가 하는 것을 밝혀서, 그 기여를 잘 하는 쪽으로 발전시켜가야 한다. 예를 들어서, 이런 개체는, 이것은 온생명의 생리를 극단적으로 해치는 개체다고 한다면 이것은 불가피하게 제거해야한다. 설혹 내 몸에 있는 어떤 것이라도 여기에 독이 들어서 이 독을 그냥 두면 내 몸 전체가 금방 죽게 된다고 할 때에는 그것을 제거해야 한다. 그러나 '내 몸을 자르는 것이 아픈 것과 마찬가지로, 온생명을 내 몸이라고 생각하고 내 몸의 일부를 잘라낸다는 아픔으로서 불가피할 때에 이것을 제거해야 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온생명이 바로 내 몸이고, 내 개체의 몸보다 온생명의 몸이 더 중요하고, 이런 상황에서 잘라낼 것은 잘라내고, 또 더 중요한 것은 북돋우고 또, 말하자면, 균형을 깨는 것은 균형을 바로 맞추고 하는 이러한 상황에서만이 윤리를 발견할 수가 있고, 그래야만 온생명도 살고 나도 산다. 이것이 우리가 지금 앞으로 바로 생각해야 될 생명윤리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온생명과 낱생명의 관계를 통한 올바른 생명관이 필요하다.

공동선아카데미 / 2003.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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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생명학연구원